본문 바로가기

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감정을 리셋하다/김영옥 감정을 리셋하다/김영옥 단톡방 댓글 한 마디 송곳으로 파고든다 쏟아부은 열정이 통증으로 되돌아올 때 앞뒤 생략하고 감정의 리셋 버튼을 먼저 누른다는 그녀 속마음 활짝 열며 가까이 다가간다는 건 쉽게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것 잠시 소통을 줄이며 넘치는 인맥의 군살을 뺀다 꾹꾹 눌러 쭉 짜낸 튜브 치약처럼, 가끔은 감정을 정리한다 2024. 3. 5.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이승하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이승하 볼품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 차갑고 반응이 없는 손 눈은 응시하지 않는다 입은 말하지 않는다 오줌의 배출을 대신해주는 도뇨관(導尿管)과 코에서부터 늘어져 있는 음식 튜브를 떼어버린다면? 항문과 그 부근을 물휴지로 닦은 뒤 더러워진 기저귀 속에 넣어 곱게 접어 침대 밑 쓰레기통에 버린다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다고 다짐하며 한쪽 다리를 젖히자 눈앞에 확 드러나는 아버지의 치모와 성기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몸을 닦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사타구니를, 허벅지를 닦는다 간호사의 찡그린 얼굴을 떠올리며 팔에다 힘을 준다 손등에 스치는 성기의 끄트머리 진저리를 치며 동작을 멈춘다 잠시, 주름져 늘어져 있는 그것을 본다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2024. 2. 6.
수면내시경/이규리 수면내시경/이규리 누군가 내 몸을 다녀갔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아무 것도 몰랐는데 뭔가 몸이 수상하다 침대 시트에 묻은 타액은 뭘 말하는 걸까 누가 내 몸을 만진 건 아닌지 배꼽 아래 흉터를 본 건 아닌지 천장에서 모든 것을 다 보았을 형광등도 형광등 자신은 한 번도 비추지 못한다 나만 모르고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듯 나를 보지 못하는 건 내가 아니다 나를 볼 수 있는 것도 내가 아니다 2024. 2. 5.
눈물/서윤규 눈물/서윤규 ​ 또다시 네 몸 속을 흐르던 물이 역류하듯 밖으로 흘러 넘치는구나. ​ 올 장마엔 어느 저수지에 가둔 슬픔의 둑이 무너져 내린 것이냐. 2023.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