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1급 연장/마경덕 1급 연장/마경덕 인부들이 떼로 모여 드릴을 돌린다 밤낮이 없는 한철 공사 울음 끝이 뾰족하다 허공에 구멍이 나는 시간, 소리에 감전된 감나무가 툭툭 풋감을 떨어뜨린다 평생 울지 않는 암컷들은 어디에 있나 그악스레 울음을 돌려야 무덤덤한 암컷의 심장이 뛰리라 거침없이 달려와 사람의 가슴까지 뚫어버리는 저 1급 연장 지하에서 수년 갈고 닦은 매미기술자들, 몸이 연장이다 그늘 밑 낮잠까지 단숨에 통과해 어디론가 달려간다 공사 기일이 다급하다고 찬바람이 불기 전 마쳐야한다고 울음은 더욱 사나워진다 허공마저 출렁거리는 저 동력은 어디서 끌어오는 걸까 잠깐 퓨즈가 나간 사이 재빨리 구멍 난 자리를 복원하는 허공 점점 달아오른 공사에 감나무는 퍼렇게 질려 가는데 날을 갈아 끼운 수컷들, 또 드릴을 돌리기 시작한다 2023. 11. 1. 나무의 건축법/오새미 나무의 건축법/오새미 햇살이 길게 팔을 늘이고 바람이 살랑살랑 찾아오는 언저리에 튼튼하게 터 잡은 나무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공사 땅을 깊게 파 잔잔한 자갈과 모래를 섞어 철재처럼 굳건한 기둥을 세운다 바위가 가로막기도 하지만 틈을 지나가며 감싸는 유연한 공법으로 해결한다 굵은 줄기로 층층이 쌓아가며 넓고 푸른 잎사귀로 인테리어를 한다 전기공사는 벌과 나비의 일 꽃들이 눈부신 조명을 켠다 바람의 노래를 부르는 우듬지 테라스 날아가는 음표들이 햇빛에 찰랑댄다 더욱 깊어지는 초록 그늘 나무의 건축이 완성되는 날 하늘은 드넓은 정원이 되어주었다 2023. 10. 26. 박꽃/이병렬 박꽃/이병렬 50년 전, 옆집 순희가 우리집에 왔다. 나는 방문을 삐끔 열고 가만히 내다보고 있었다. 어머니하고만 이야기를 나누고 순희는 사립문을 나섰다. 그냥 가는가…… 순희가 힐끗 뒤돌아 볼 때 눈빛이 맞았다. 나는 웃었는데 순희는 수줍게 얼른 고개를 돌렸다. 뽀얀 얼굴이 더 뽀얘졌다. 유난히 얼굴이 하얗던 달덩이 우리 순희. 오늘 저녁, 옆집 울타리에 박꽃이 다시 피고 하얀 달이 떴다. 그리고 그 옛날 순희가 나를 쳐다봤다, 50년 전보다 더 수줍어했다. 2023. 10. 22. 개울/도종환 개울/도종환 개울은 제가 그저 개울인 줄 안다 산골짝에서 이름없는 돌멩이나 매만지며 밤에는 별을 안아 흐르고 낮에는 구름을 풀어 색깔을 내며 이렇게 소리없이 낮은 곳을 지키다 가는 물줄기인 줄 안다 물론 그렇게 겸손해서 개울은 미덥다 개울은 제가 바다의 핏줄임을 모른다 바다의 시작이요 맥박임을 모른다 아무도 눈여겨보아주지 않는 소읍의 변두리를 흐린 낯빛으로 지나가거나 어떤 때는 살아 있음의 의미조차 잊은 채 떠밀려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고 있는 줄로 안다 쏘가리나 피라미를 키우는 산골짝 물인지 안다 그러나 가슴속 그 물빛으로 마침내 수천 수만 바닷고기를 자라게 하고 어선만한 고래도 살게 하는 것이다 언젠가 개울은 알게 될 것이다 제가 곧 바다의 출발이며 완성이었음을 멈추지 않고 흐른다면 그토록 꿈꾸던 바다.. 2023. 10. 22.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1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