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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314

졸병, 전방 일기/김춘기 졸병, 전방 일기     겨울 철책선에서 홀로 경계 서던 병사    종일 사격과 각개전투, 수류탄 던지기 훈련으로 졸음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까마귀 울음이 산굽이 돌고, 고추바람이 콧등 베어도 눈꺼풀은 연신 내리 덮였다. 정적이 잠깐 흐르고 눈 번쩍 뜨는 순간, 손전등 불빛과 함께 당직사관이 눈앞에 멈춰 있었다. 병사는 얼른 ‘아버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을 외쳤다. 당직사관의 부드러운 손길이 어깨에 닿으며, 큰형님 같은 미소가 나를 감쌌다.    너, 지금   기도했구나   부모님 편찮으시니? 2023. 10. 15.
알고 보니/김춘기 알고 보니     휴일   전철에 실려 온양온천 가는 길    내 바로 앞자리 젊은 여성 둘 무릎 대고 앉아 있었다. 그 곁 루비 반지에 루주 짙은 신중년 아줌마, 눈길 맞춘 보브컷 머리 여성에게 대뜸 궁금증 건넨다. 아이는 몇이나 되나요? 휘파람새 같은 목소리가 바로 돌아왔다, 다섯입니다. 순간 내 눈 동공이 확대되었다. 그녀 곁 플라운스 스커트 여성도 카나리아 노랫소리로 웃음 감싸며, 응답 덧댄다. 저는 최소한 열 명은 넘어야 족하는데요. 전철 칸 사람들 동공이 확대 수축을 반복하며, 저물녘 역전 비둘기 먹이 찾는 소리처럼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알고 보니,    그날 그   젊은 여성들은   초교 선생님이었다. 2023. 10. 15.
블루베리/김춘기 블루베리/김춘기   텃밭 돌담 곁에 사는 블루베리 나무눈물처럼 매달리는 깜장 빨강 열매들작년엔오목눈이에게 식량으로 공양했다 올해도 새콤달콤한 블루베리 구슬들엄지만한 배마다 통통히 채운다고박새들전선에 앉아 ‘고맙습니다’ 지저귄다 2023. 10. 15.
가을/김춘기 가을/김춘기   철없는 그 계절이 국경 넘어 또, 왔구나 큰형님은 한의원, 형수는 정형외과로 올가을소슬바람도 무릎마다 둥지 틀었다 2023.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