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가장 위험한 동물/이산하 가장 위험한 동물/이산하 몇 년 전 유럽여행 때 어느 실내동물원을 구경했다. 방문마다 사슴, 늑대, 사자, 악어 같은 동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 방문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고 깊이 새겨져 있었다. 호기심에 얼른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방은 텅 비어 있었고 정면 벽에 커다란 거울 하나가 걸려 있었다. 내 얼굴이 크게 비쳤다. 2022. 9. 13. 윈도우 스트라이크 / 김미향 윈도우 스트라이크 / 김미향 아파트 20층 유리창은 새의 반환점, 인증 샷을 찍듯 여기저기 새의 낙관이 찍혀 있다 새의 시력은 사력을 다해도 원시안이어서 한 마리의 새가, 창문을 창공으로 오독한 것일까 새들이 머리로 유리창을 읽다 아예 산문散文이 돼버린다 저렇게 혼신을 다해 심독하는 몰입도 있다니, 마침표 하나를 찍기 위해 얼마나 꾹꾹 눌러 썼으면 부리가 다 구부러졌을까 창문에 부딪혀 길바닥에 부사副詞처럼 떨어져 있는 새들 공중의 사후를 본다 창가에 앉아 책갈피에 꽂아 둔 압화를 화분에 옮겨 심는다 이렇게 높은 데서 뿌리내리기도 힘든데 꽃이라고 피겠어? 라고 누군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내는 사이 또 한 마리의 새가, 금이 간 공중의 틈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화분에 물 대신 햇빛이 듬뿍 뿌려진다.. 2022. 8. 22. 등받이의 발명/배종영 등받이의 발명/배종영 의자는 누구든 앉히지만 스스로 앉아본 적은 없다 의자가 특히 이타利他적 사물인 것은 등받이의 발명 때문이다 사람의 앞이 체면의 영역이라면 등은 사물의 영역이지 싶다 기댄대는 것, 등받이는 혈족이나 친분의 한 표상이지도 싶다. 갈수록 등이 무거운 사람들 등받이에 등을 부려놓고 비스듬히 안락을 느끼는 것이다 언젠가 본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은 취한 남자가 끝까지 넘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몸에 등받이 달린 의자 하나 들어 있지 싶었다. 취약한 곳에는 대체로 이타적인 것들이 함께 있다 혈혈단신한테도 온갖 사물이 붙어 있어 결코 혼자인 것은 아니지 싶다. 등받이는 등 돌리는 법이 없듯이 나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등에서 절대적인 등을, 등받이를 배운 사람이다. 계산 없이 태어난 사물은 없지.. 2022. 8. 22. 고등어구이/임경묵 고등어구이/임경묵 반으로 갈라 소금에 절여놓은 고등어를 팬에 굽는다 데칼코마니 같다 고등어 등에서 푸른 바다가 슬그머니 빠져나와 팬에 지글거린다 기름을 두르지 않았는데도 알맞게 소란하다 혼자 먹어도 좋고 함께 먹어도 좋은, 젊은 날의 어머니는 대설주의보가 내린 그해 겨울 아침에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오늘처럼 고등어를 굽고 있었어요 이건 그냥 물어보는 건데 그때 왜 어머니는 푸른 고등어가 새까맣게 타는 줄도 모르고 얼굴을 파묻고 울기만 했어요 새봄이 오기 전에 우린 또 어딘가로 이사를 해야 했단다 비릿한 탄내가 어머니의 부엌에 가득하다 가족이라는 그물에 걸려 일생을 퍼덕거리다가 비밀스러운 샘물이 다 말라버리고 푸른 등이 새까맣게 타버린 어머니를 젓가락으로 가르고, 뒤집고, 가시를 발라 그중 노.. 2022. 8. 18. 이전 1 ··· 29 30 31 32 33 34 35 ··· 1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