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적자/문숙 적자/문숙 인생의 절반을 소비했다 날밤을 새운 날도 많았다 남은 거라곤 뉘 집 냄비받침이나 되어 있을 시집 두세 권이 전부다 그 동안 옆집 동갑내기 여자는 오억 짜리 아파트를 사서 십억을 만들었다 십억 짜리 아파트를 사서 이십억을 만들었다 내가 지금 냄비받침 같은 신세가 된 건 돈 없어도 배부를 것 같은 시에 홀딱 넘어간 탓이다 시를 쓰는 것이 어떠한 힘이나, 또 현실적인 밥이 되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흔히 시는 왜 쓰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받을 때가 없지 않아 있다. 요즘과 같이 부(富)라는 현실적 가치가 강조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특히 우리의 젊은 시절, 시인이 되기 위해서 밤을 낮같이 사는 자식이 안쓰러워 우리의 부모님들이 하시던 말씀이기도 하다. 시가 밥이 되니 집이 되니, 왜 가난한 삶.. 2021. 12. 27. 봄, 벼락치다/홍해리 봄, 벼락치다/홍해리 천길 낭떠러지다, 봄은. 어디 불이라도 났는지 흔들리는 산자락마다 연분홍 파르티잔들 역병이 창궐하듯 여북했으면 저리들일까. 나무들은 소신공양을 하고 바위마다 향 피워 예불 드리는데 겨우내 다독였던 몸뚱어리 문 열고 나오는게 춘향이 여부없다 아련한 봄날 산것들 분통 챙겨 이리저리 연을 엮고 햇빛이 너무 맑아 내가 날 부르는 소리, 우주란 본시 한 채의 집이거늘 살피가 어디 있다고 새 날개 위에도 꽃가지에도 한자리 하지 못하고 잠행하는 바람처럼 마음의 삭도를 끼고 멍이 드는 윤이월 스무이틀 이마가 서늘한 북한산 기슭으로 도지는 화병, 벼락치고 있다, 소소명명! 2021. 12. 26. 센 놈/이진수 센 놈/이진수 비얌이 우예 센지 아나 내사마 모르겠다 우예 센 긴데 참말 모르나 그놈이 센 거는 껍데기를 벗기 때문인기라 문디 자슥 껍데기 벗는 거하고 센 거하고 무신 상관이가 와 상관이 없다카나 니 들어 볼래 일단 껍데기를 벗으모 안 있나 비얌이 나오나 안 나오나 나온다카고 그래 씨부려 봐라 그라모 그기 껍데기가 진짜가 시상 새로 나온 비얌이 진짜가 문디 시방 내를 바보로 아나 그기야 당연지사 비얌이 진짜제 맞다 자슥아 내 말이 그 말인기라 껍데기 벗어던지고 진짜 내미는 놈 그런 놈이 센 놈 아이겠나 넘 몰래 안창에다 진짜 감춘 놈 그런 놈이 무서븐 거 아이겠나 어떻노 니캉 내캉 홀딱 벗어 뿔고 고마 확 센 놈 한번 돼 보까 2021. 12. 26. 아지매는 할매되고/허홍구 아지매는 할매되고/허홍구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2021. 12. 26. 이전 1 ··· 45 46 47 48 49 50 51 ··· 1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