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24시 편의점/진순희 24시 편의점/진순희 4000개의 품목을 갖춘 편의점 24시간 환한 조명에 누군가의 잠이 아르바이트로 진열되고 불면을 구매한 사람들이 밤의 틈새로 드나든다 익숙한 손길로 한 사내가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뚜껑을 닫고 그가 우두커니 바라보는 3분은 어디일까 데우는데 단 20초 영양분 보다 염분이 더 많은 800원으로 허기진 위장을 채우는 시간 출, 퇴근을 겨냥한 편의점 터줏대감 삼각김밥 보란 듯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유통기한을 이마에 붙인 상품처럼 처분해야할 시간을 들고 거리를 배회하는 도시가 남아도는 시간을 배설하는 곳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몇 푼으로 자신의 편의를 버려야하는 이곳 오늘도 편의점이 잠을 반납할 사람을 구하고 있다 도시의 꼭짓점 저 각이 아슬하다 2021. 12. 28. 발굴/이동호 발굴/이동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유언대로 선산에 묻어드렸다 무덤가에는 여기저기 암세포들이 만발했다 땅 속에서 차올랐던 복수腹水가 콜록콜록 기침소리를 내며 계곡으로 흘러들었다 손톱들이 언 땅을 벅벅 긁어대며 올라오고 있었다 땅 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은 모두 다 파랗게 질려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은 모처럼 액정 화면을 환하게 켜놓고 있었다 구름들이 여기저기 문자메시지처럼 찍혀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남은 유품들을 정리하던 중에 휴대폰이 나왔다 휴대폰도 아버지처럼 죽어있었다 외투 주머니가 땅 속이라는 듯 편하게 누워있었다 나는 외투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안방으로 옮겼다 따뜻하게 전원을 넣었다 휴대폰 속에서 호흡 고르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한순간 아버지가 액정을 번쩍 뜨셨다 2021. 12. 28. 소싸움/황인동 소싸움/황인동 자 봐라! 수놈이면 뭐니뭐니 해도 힘인기라 돈이니 명예이니 해도 힘이 제일인기라 허벅지에 불끈거리는 힘 좀 봐라 뿔따구에 확 치솟는 수놈의 힘 좀 봐라 소싸움은 잔머리 대결이 아니라 오래 되새김질한 질긴 힘인기라 봐라, 저 싸움에 도취되어 출렁이는 파도를! 저 싸움 어디에 비겁함이 묻었느냐 저 싸움 어디에 학연지연이 있느냐 뿔따구가 확 치솟을 땐 나도 불의와 한 판 붙고 싶다 2021. 12. 28. 조금새끼 / 김선태 조금새끼 /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 2021. 12. 27. 이전 1 ··· 44 45 46 47 48 49 50 ··· 1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