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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칙, 칙, 압력솥/마경덕 칙, 칙, 압력솥/마경덕 추가 움직인다. 소리가 뜨겁다 달리는 기차처럼 숨이 가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더는 참을 수 없는 듯 추를 마구 흔든다 지금 당장 말리지 않으면 머리를 들이받고 자폭할 기세다 저 맹렬한 힘은 무엇인가 저 안에 얼마나 많은 신음이 고여 있는가 슬픔이 몸을 찢고 나온다 소리가 집 한 채를 끌고 달린다 밤기차를 타고 야반도주한 여자처럼 속이 탄다. 부글부글. 2022. 1. 6.
칼춤/박지웅 칼춤/박지웅 고향집에 가면 어미는 칼부터 든다 칼이 첫인사다 칼은 첫 문장이다 도마에 떨어지는 칼 소리 저 음질들을 맞추어 읽는다 부부의 물을 베던 칼 부엌에서 할짝할짝 울던 칼 나를 먹이고 키우던 칼 먼 길 돌아온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칼 어미는 날 앉히고 칼춤을 춘다 2022. 1. 6.
백수/안상학 백수/안상학 ​ 요즘 아내의 방문 여닫는 소리 자꾸만 크게 들린다. 도대체 뭘 해요 쿵, 뭐 좀 어떻게 해봐요 쿵, 부글부글 속 끓다가도 끽, 뭐라 목젖을 잡아당기다가도 끼익, 한숨 한 번 내쉴 양이면 그마저 문소리에 끼여 끽, 문소리가 격해질수록 나는 벙어리가 되어간다. ​ 쿵, 하는 문소리 사그라지는 틈으로 아내의 목소리 아이더러, 아빠 식사하세요 해, 하는 말 엿듣고 눈물 난다. 2022. 1. 3.
푸른 소금/피재현 푸른 소금/피재현 머리를 곱게 빗은 전옥례 할머니는 엄마더러 자꾸 집에 가라 했다 혼자 살더라도 집에 가서 죽으라고 가뜩이나 요양원 탈출을 꿈꾸는 엄마를 부추겼다 당신은 가고 싶어도 갈 집이 없다고 며느리 보기 싫어 제 발로 나왔으니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한다고 한겨울 한봄 그렇게 잡혀 있는 동안 일곱이 죽어 나갔는데 나도 곧 죽겠지 오래 살기야 하겠냐고 머리를 곱게 빗은 전옥례 할머니는 나에게 가끔 설탕을 사다 달라고 했다 토마토며 덜 익은 수박에 설탕을 뿌려 여섯 침상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엄마가 퇴원하는 날 ‘할매요 고마 우리 집에 가서 우리 엄마랑 같이 살아요’ 했더니 실없는 그 말에 아흔여섯 전옥례 여사 눈빛이 아주 잠깐 푸른 소금처럼 잠깐 빛났다 2022.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