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신발에 관한 동화/임보 신발에 관한 동화/임보  아버지가 장에 가서신발을 사 오셨다5남매의 신발다섯 켤레 고무신이었다성미 급한 형은 며칠 신다 굽이 터지자 엿 사 먹고 말았다마음 착한 누나는 매일 깨끗이 닦아 조심 조심 신었다개구쟁이 막내 동생은개천이고 산이고 첨벙대며 신고 다녔다소심한 누이동생은 댓돌 위에 얹어 놓고 바라다만 보았다나도 돌밭길을 달릴 때는두 손에 벗어 들고 맨발로 뛰었다어느 날 아버지가 형제들을 불러 놓고자신의 신발들을 가져 오라 이르셨다.형은 없는 신발을 가져올 수 없었고막내의 신발이 제일 엉망이었다가장 양호한 신발은 누이와 누님의 것새 신발이 필요한 자는 바꾸어 주리라아버지가 이르셨다그러자 손을 든 놈은 오직 막내뿐이었다 2024. 6. 22.
그리운 바다 성산포/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그 빈자리가 차갑다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곯았다.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 2024. 6. 16.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김승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그래도 사랑의 불은 꺼트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어떤 일이 있더라도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뇌출혈로 쓰러져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그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섬, 그래도그런 마음들이 모여사는 섬, 그래도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2024. 6. 16.
​신문지의 노래/허민​ ​신문지의 노래/허민​  나를 스쳐간 독자여지나온 생을 되돌아보는 밤이다구멍 난 가슴 한쪽 스스로를 위한작은 부고 기사 하나 실어보지 못하고결국 이렇게 끝을 맺는 밤이다낡은 집 바닥에 젖은 채 누워한껏 페인트나 풀을 뒤집어쓰거나먹다 남은 짜장면 그릇 따위 덮고 있을 줄몰랐던 쓸쓸한 밤이다노숙인의 유품이 되어 그의 마지막 겨울을나의 마지막으로 덮게 될 줄 몰랐지만마지막까지 나를 필요로 했고나는 그의 외로움을 가려주었으니조금은 괜찮았던 밤이다생이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으니내가 한 그루 푸르고 싱싱한 나무였을 적한 여인이 내게 등을 기댄 채텅 빈 하늘만을 바라보기도 했지만대답하지 못하는 내게 말을 걸기도 했지만괜찮다, 나쁘지만은 않았지 생각한 밤이다그녀를 위한 한 권의 인생이 되기 위해방울의 손톱들을 삼키고여.. 2024.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