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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1109

You’re 독존/김정희 You’re 독존 치열했던 당신의 시간들 이제는 천천히 걸어도 된다 2024. 4. 16.
담장을 허물다/공광규 담장을 허물다/공광규 ​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살던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 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 그늘 수십 평과 까치집 세 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은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밤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 꽃이 하얗게 덮은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2024. 4. 11.
글썽/윤수하 글썽/윤수하 저 언덕에 나무 한 그루 글썽거리고 서 있습니다. 나는 오래도록 그 모습을 못 잊어 한 번씩 가서 봅니다. 젖배 곯은 아이의 궁핍이 나무의 모습에 스몄습니다. 옷자락 차마 잡지 못하고 보낸 쓸쓸함도 나무의 그림자에 스몄습니다. 우주는 천천히 돌지만 못한 이야기를 다 들려줍니다. 2024. 4. 3.
멸치/김기택 멸치/김기택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 속 지느러미의 물결 사이에 끼어 유유히 흘러 다니던 무수한 갈래의 길이었다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들을 떼어냈던 것이다 햇빛의 꼿꼿한 직선들 틈에 끼이자마자 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길을 잃었을 것이다 바람과 햇볕이 달라붙어 물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바다의 무늬는 뼈다귀처럼 남아 멸치의 등과 지느러미 위에서 딱딱하게 굳어갔던 것이다 모래더미처럼 길거리에 쌓이고 건어물집의 푸석한 공기에 풀리다가 기름에 튀겨지고 접시에 담겨졌던 것이다 지금 젓가락 끝에 깍두기처럼 딱딱하게 잡히는 이 멸치에는 두껍고 뻣뻣한 공기를 뚫고 흘러가는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는 아직도 지느러미가 있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결이 있다 이 작은 물결이 .. 2024.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