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밭/時調205 (사설시조)연인산, 사월 뉴스 연인산, 사월 뉴스 김춘기 연인산, 사월 뉴스 봄산은 폭발한다, 들꽃의 빅뱅이다. 청바지차림 사월 맥박소리가 샛강에서 산봉우리까지 물길을 낸다. 봄볕을 물어 나르는 말총벌 알락나비는 신참 집배원. 해종일 바람의 어깨에 앉아 산모롱이 돌고, 징검다리 건너 고샅길 위를 비행하며, 처녀 총각 연서를 배달한다. 바람난 종다리, 꾀꼬리 울음이 하늘 끝에 닿을 때까지 대지의 참젖을 빨아들이는 굴참나무. 산봉우리 비늘구름, 새털구름이 초록 분무기 꺼내어 교대로 들녘 곳곳에 꿀비를 촉촉하게 뿌리고 간다. 승안리 마을은 온통 꽃집 개점 중이다. 2009. 3. 25. (사설시조)킹조지섬* 황제펭귄 킹조지섬 황제펭귄 김춘기 영하 70도 빙벽 아래, 설원은 펭귄의 모국 극야의 고추바람이 만년설의 뺨을 한 겹씩 벗겨내는 섬. 알을 낳은 어미 펭귄, 허기진 배를 붙들고 머나먼 바다로 떠난다. 오색 오로라 커튼 열며 맨발 내디딜 때마다 눈보라가 발자국 지우며 따라온다. 암컷에게 알을 받은 수컷, 발등에 생명을 곱게 얹어 아랫배의 온기를 겹겹 덮는다. 눈밭 위 퉁퉁 부은 두 발, 발가락 핏줄이 선명하다. 두어 달 크릴새우 한 점 입에 넣지 못한 아비 펭귄. 반쪽이 된 몸에 허공을 두르고, 자리 지킨다. 바다표범의 푸른 눈빛이 설야 틈새로 들어오고, 도둑갈매기 저공비행이 낮게 깔린다. 바람을 밀어내던 아비, 순간 언 몸에 싸라기눈이 다닥다닥 들러붙는다. 또다시 블리자드 사나운 설원에 이정표처럼 서 있는 펭귄,.. 2009. 3. 18. 허공의 집(사설시조) 허공의 집 / 김춘기 녹양동 연립주택 창가 거미집 한 채 밀잠자리 한 마리 거미줄에 양 날개 반듯, 십자가의 예수처럼 박제되어 있다. 다리에 거미줄 감겨 미동도 않는 몸, 찢긴 날개 무늬 선명하다. 어두운 길목 덫을 던진 주인 어디로 갔나. 난간에 걸려있는 시간이 어둠의 귀퉁이 붙들고 흔들린다. 동네 소식 궁금한 바람 진종일 드나들고, 담뱃가게에나 이따금 오가는 사람들 못 본 채 서로 외면이다. 실핏줄처럼 얽힌 전선들이 오후 내내 진눈깨비 털어내고 있다. 캐럴송이 가로등 불빛 접으며 산동네로 오른다. 평생 집 없이 떠돌던 잠자리, 빈집 한 채 얻어 긴, 긴 겨울 나고 있다. 길 건너 옥탑방 남자 혼자서 늙고 있다 2008. 12. 30. 임진강 신갈나무/김춘기 임진강 신갈나무/김춘기 잘려나간 시간의 마디 물비늘로 여울집니다. 손때 절은 상봉신청서 부적처럼 고이 품고 다 꺾여 반 뼘쯤 되는 그 목숨마저 꺾습니다 손 가만가만 흔들던 산비알 위 신갈나무 땡볕에 뒤척이는 강만 내려보다가 단, 한 장 갈잎이 되어 벼랑으로 구릅니다. 신기루 같은 그리움이 사시사철 강물이라면 임진강 오르내리는 등지느러미 선명한 한 마리 눈이 큰 갈겨니, 갈겨니가 되고 싶습니다 2008. 8. 19. 이전 1 ··· 41 42 43 44 45 46 47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