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밭/時調205 한라산이 아프다/김춘기 한라산이 아프다/김춘기 숨찬 청소 트럭 비탈 기어오른다. 귀가 중 타이어에 밟힌 비바리뱀, 참개구리, 제주도롱뇽이 뼈만 남은 채 갑골문자가 되어 시멘트 길섶에 흩어져 있다. 서귀포 위생매립장 울 밖에서 만개하던 산딸나무 때죽나무가 돌아앉아 코를 막고 있다. 굴삭기 무쇠 이빨이 산허리를 찍을 때마다 깔끔좁쌀풀, 섬매발톱, 구름체꽃, 한라장구채가 몸을 파르르 떨며, 뒷걸음질이다. 덤프가 토사물을 게워놓자 악취가 안개의 등을 떠밀며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간다. 불도저는 한라산 옆구리의 포실포실한 흙을 밀어다 그 위에 다져 넣는다. 배 주린 산까치와 큰부리까마귀가 검은 비닐을 헤집으며, 머리 반쪽뿐인 북어를 서로 빼앗는다. 산책 나온 노루가 목 잘린 마가목을 올려다보고는 금세 산기슭으로 사라진다... 2023. 2. 9. 해탈/김춘기 해탈/김춘기 태백산 눈사태에 늙은 주목 팔 꺾였다 천년의 극한 수행 눈썹꽃 핀 저 신선(神仙)들 천탑(天塔)은 또다시 천년 하늘 뼈로 버틸 것이다 2023. 1. 3. 복사되다/김춘기 복사되다/김춘기 어제가 복사된다, 뻐꾸기시계 울음 맞춰 점심은 건너뛰고 TV 켜놓고, 돼지꿈 꾸고 몇 달째 황사 하늘에 햇살마저 잿빛이다 구겨진 그제가 어제로 복사된 어제는 오늘로 고향길도 끊겼다, 전화통은 방전이다 시간만 궤도 차량처럼 시간 위를 달리고 있다 2022. 12. 26. 시조를 읽는 아침의 창(제주일보) 제주일보에 실린 작품들 2022. 12. 24. 이전 1 ··· 3 4 5 6 7 8 9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