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밭/時調205 아들에게/김춘기 아들에게/김춘기 네가 벌써 자라나 지아비가 되는구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 그 말, 너도 알고 있지. 개성은 다르다는 것, 인정하며 사는 거다. 목련 같은 네 아내 이기려 들지 말거라. 이익 보며 살겠다면, 그건 비즈니스겠지 내가 좀 손해 본다는 맘 그게 사랑이란다. 배우자의 본뜻을 오늘 내가 알려주마. 부부가 상대를 배우자(配偶者)라 칭하지만 사랑탑 백 년 쌓으며 –서로 배우자- 그 말이지. 2023. 5. 8. 형상기억합금/김춘기 형상기억합금/김춘기 거울 속 내 이마는 할아버지 닮았다등의 굵은 점 두 개할머니와 판박이탕에서 아들 등 보니, 그 복점이 보인다 아내는 딸내미가 꼭 내 성격이란다신년 계획 작심삼일고집 불통까지도그래도 오똑한 코에 마음 따순 딸이다 2023. 2. 27. 우수, 덕수리/김춘기 우수, 덕수리/김춘기 한라산 기슭 눈도 빈혈증에 헬쓱하고 숫염소처럼 들이받던 꽃샘마저 무릎 꺾는다 이장집 산수유 눈망울 물오르는 종아리 동백꽃잎 남실남실 우표처럼 깔린 고샅 봄바람에 실려 오는 산방산 유채꽃 향기 텃새들 부리, 부리마다 봄 한 톨씩 물고 있다 2023. 2. 19. 우크라이나의 봄/김춘기 우크라이나의 봄 흑해 연안 눈이 녹고, 키이우에 봄이 왔다. 하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미사일 불꽃만 만발이다. 탱크 장갑차 무한궤도가 하늘도 구겨진 도시 언저리를 진종일 밟고 있다. 전투기 굉음이 쏟아지자 화염과 함께 무너지는 교외 화력발전소 높은 굴뚝, 탄흔 가득한 국립 중앙병원 수술실 바닥 깨진 링거병 조각조각들, 강변 애기동백 꽃잎처럼 흩날리는 젊은 병사들의 붉은 비명, 교문 곁 제일 큰 자작나무 밑동에 몸 숨긴 교복 차림 꼬맹이들 새파란 울음, 그 앞에 겉장 찢긴 역사 교과서 꼭 쥐고 누워있는 선생님 시신, 카시오페이아자리 별빛 두어 줄기 깔린 국경선 쪽으로 향하는 심야 숨죽인 피난민 행렬 발자국소리 봄에도 우크라이나엔 겨울만 가득하다. 2023. 2. 19. 이전 1 2 3 4 5 6 7 8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