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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314

구도시 너덜겅 구도시 너덜겅 김춘기 몸 불편한 하루가 편의점에서 나와 다 낡은 가방 메고 고시원으로 향한다 골목길 쓸던 바람이 언덕길에 멈춘 심야 건너뛴 끼니들을 컵밥으로 때우는 취준생 발걸음이 모래주머니처럼 무겁다 이정표 없는 너덜겅, 쉼터 없는 하루하루 갑과 을이 무엇인가 을의 을은 또, 웬말인가 일층, 이층 흘러가는 강물도 있다던가 가슴에 고인 눈물이 황사비로 내린다 2018. 7. 19.
화학실험과 웨딩마치 화학실험과 웨딩마치 김춘기 1. 대정여고 귀요미들 화학실험 한창이다 염산 든 비커에 수산화나트륨 넣고 있는 가온이 백합꽃 얼굴 물여울 같은 목소리 센 녀석 둘이 만나 큰일 낼 줄 알았는데 다소곳한 중화반응 왁자해진 과학실 선생님 반달 웃음에 샛별이 된 눈동자들 2. 고양이 성깔 딸내미와 들소 고집 예비 사위 카풀 연애 팝콘 튀겨 웨딩마치 울린단다 아내의 손 모은 밤들이 깊고 길게 이어진다 2018. 7. 15.
숨비소리, 수평선 흔들다 숨비소리, 수평선 흔들다 김춘기 섣달에도 꽃이 핀다, 검푸른 물밭 위에 망사리 진 상군 할망 발걸음 잰 가파도 금채기 끝난 포구에 테왁 꽃이 만발이다 남편이고 자식이고 친구이던 평생 일터 여름에도 겨울인 삶 눈물은 가슴에 묻고 바다가 목숨이라며 바다처럼 웃던 당신 꽃샘바람 눈설레도 가던 발길 멈추고 섬 혼자 종일토록 먼지잼에 젖던 그날 이어도 썰물 길 따라 별이 되어 떠나셨죠 가족을 등에 지고 오늘도 낮아지는 물의 근육 일렁이는 파도의 늪 헤치는 어머니 숨비소리가 수평선 흔들고 있다 2018. 6. 24.
수유리 먹자골목 수유리 먹자골목 김춘기 오늘 따라 갈빗집에 손님들이 북적이는구만유. 먹자골목에서 제일 큰 희망마트 점장, 대리, 캐셔, 청소원 아줌마, 배달원 아저씨, 어물전 배불뚝이, 정육코너 코털총각이 왁자지껄 웃음지껄 북적이며 회식날이라며 음식점 문을 연다. 그때 음성 걸걸한 갈빗집 대머리 사장, 종업원을 불러모아 하는 말. ‘오늘은 손님들에게 서비스 곱빼기입니다, 잘 좀 부탁해유. 알것지유? 접시에 달빛웃음도 가득 담구유, 양귀비 눈빛 애교는 양념으로 살짝살짝 뿌리구유. 상추 파절임 쑥갓두 푹푹 드리셔유, 무신 말인지 이해하겠지유?’ 근데요 사장님! 오늘은 뭔가 특별한 날인가부지유? 실은요, 오늘 갈비에는 늙은 수퇘지가 잔뜩 들어왔지, 뭐유. 2018.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