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상계1동 수락산 입구/김기택 상계1동 수락산 입구/김기택 해마다 조금씩 기우는 집들 판자와 천막과 비닐로 지붕을 기운 집들 나무 기둥과 벽돌에서 푸른 이끼 자라는 집들 하루 종일 빨래만 널려 있고 사람은 안 보이는 집들 숨 쉴 때마다 변소와 하수도 냄새 들썩거리는 집들 비가 오려고 하면 마디마디 관절이 쑤시는 집들 해마다 봄이 되면 아픈 곳이 갈라지고 터지는 집들 페인트 냄새 마르지 않은 고층 아파트 바로 밑에서 큰 열대 초목 화분에 신장개업 띠를 두른 영양결핍 옆에서 땅값이 오르기를 끈질기게 기다리며 있는 힘을 다해 낡아가는 집들 2023. 2. 23. 명태/임영석 명태/임영석 입을 짝 벌린 명태 한마리 묶어 자동차 트렁크에 몇 년을 달아 놓고 다녔다 트렁크를 열 때마다 놈은 눈을 더 부릅뜨고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몇 년을 굶은 놈의 몸을 만지니 이미 몸은 새가 되어 날아가고 두 눈만 살아서 바다로 돌아가겠다는 자세다 몇 년을 굶은 마른 명태의 입에서는 본능의 힘으로 바다를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요동을 치는지 실타래가 삭아 더는 묶어 놓을 수가 없다 2023. 2. 23.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김기택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김기택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를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 갓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를 들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 2023. 2. 22. 사랑의 물리학/김인육 사랑의 물리학/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 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 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2023. 2. 4.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1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