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밭314 높아질수록 낮아지다/김춘기 높아질수록 낮아지다/김춘기 북한산이 황사 바다 유영하는 봄날 백운대 오르는 길 화계사 돌아 쉼터에서 야호 하며 메아리를 만드네 울창한 굴참나무, 소나무들이 중턱에 집성촌 이루고 숨 차오르는 비탈길 곁 산초나무, 생강나무, 쥐똥나무가 고사리손으로 우리를 반기며 쉬어 가라 하네 키 낮춘 바람 손수건 들고 다가와 이마의 땀 씻어주네 봉우리에 가까워질수록 안개 짊어진 하늘이 산 위에 낮은 지붕 만들고 있네 삼양동 정류장에서 내려 스카이아파트 지나 우정연립 골목길 계단 쉬엄쉬엄 올라 허리 펴면 달동네 금자가 창문 빼꼼 열고 물끄러미 내다보네 양철지붕 블록집들이 삐뚤빼뚤 구름 붙들고 있네 길 건너 평상엔 할머니들이 10원짜리 민화투 치고, 그 곁 손자 손녀들 웃음소리가 가위-바위-보 술래잡기하며 너덜겅 오르내리네 .. 2021. 7. 4. 청딱다구리 포란반/김춘기 청딱다구리 포란반/김춘기 사계절 따닥-딱-딱 목탁 치며 기도하는 노고산 은골고개 목청도 푸른 청딱따구리 부부 부리가 으깨지도록 자작나무를 판다 새봄이면 알 낳아 교대로 품는 어미 아비 둥지에 털 뽑아낸 여린 속살 포란반* 앙가슴 붉은 살갗의 맥박이 가쁘게 뛴다 오늘도 이른 아침 출근하는 큰아들 부부 두 손주 어린이집에 보내고 데려오고 포란반 마음에 새긴 청딱따구리 한 쌍이다 *포란반(抱卵斑): 새들이 알을 품을 때, 체열을 직접 알에 전하기 위해 배의 털을 뽑아내어 맨살이 드러난 자리 2021. 7. 3. 맘스카페, 맘/김춘기 맘스카페, 맘/김춘기 등하교 시간마다 차량 불빛 끝이 없는 영어마을 H아파트 커뮤니티 이층 사랑방 그 이름 맘스카페라 문 앞에서 서성거린다 내가 아빠라 그런지 늘상 맘이 씁쓸하다 오늘도 젊은 엄마들 나를 보며 싱긋빙긋 내일은 가발이나 쓸까나? 맘스에 맘이 쓰인다 -맘스카페, 맘 작품평 김춘기 시인은 요즘 부쩍 많아진 “맘스카페”를 통해 여성 중심의 육아 전통과 현재도 그러한 분위기를 돌아보게 한다. 오래 전부터 육아는 엄마인 여성의 몫으로 치부했으므로 아빠인 남성들은 소외되기 일쑤였다. 요즘은 남성의 육아휴직도 늘고 있다지만, “맘”이라는 이름을 내건 자리에 아직은 아빠들이 끼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 학교의 자녀 상담이든 발표회든 아빠들이 엄마들과 똑같이 참여하기엔 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현실도 양.. 2021. 7. 3. 코뿔소/김춘기 코뿔소/김춘기 사바나 관목 숲을 건기 내내 뒤적인다 나미비아 붉은 햇살 등에 가득 짊어지고 엽총 알 박힌 발 끌며, 초원 누비는 코뿔소 젊은 포수 조준경 시선 연신 흐트리며 가닿은 샛강에서 목축이는 늙은 가장 우도 끝 바위에 앉아 성산일출봉 바라본다 2021. 4. 23.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