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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유랑/박성우 유랑/박성우 백일도 안 된 어린 것을 밥알처럼 떼어 처가에 보냈다. 아내는 서울 금천구 은행나무 골목에서 밥벌이를 한다 가장인 나는 전라도 전주 경기전 뒷길에서 밥벌이를 한다 한 주일 두 주일 만에 만나 뜨겁고 진 밥알처럼 엉겨 붙어 잔다 2023. 10. 2.
부끄러움/윤효 부끄러움/윤효 치통에 시달리시던 팔순 노모 앞니 두 개 마저 뽑으셨을 때보다​ 여고생 딸년 점심 도시락 먹다가 젓가락 깨물어​ 앞니 끄트머리 살짝 떨어져나갔을 때에 ​ 제 마음 더욱 오지게 쓰리고 아팠습니다 2023. 9. 17.
신과 함께/반칠환 신과 함께/반칠환 산과 들, 나무와 풀, 곰과 연어... 아이누족들은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신이라 불렀다. 그들 은 평생 신과 함께 살다 갔다.산도 들도, 나무도 풀도, 곰도 연어도... 나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걸 팔고 사는 법을 배웠다. 나는 평생 물건들과 함께 살다 갈 것이다 2023.가을호 2023. 9. 13.
라디오/박완호 라디오/박완호 노인은 고장 난 라디오처럼 자꾸 지지직거렸다. 탈골된 뼈들끼리 부딪히는 둔탁한 파열음이 간간이 새어나오는 낡은 스피커. 녹슨 목울대가 가끔씩 소리를 놓치기라도 할 때면 벽에 걸린 풍경화는 턱, 턱, 검은 침묵 속으로 잠겨들곤 했다. 구름도 울고 넘는 산 아래 그 옛날 살던 고향이 있던* 곳을 지나칠 때마다 안개 속을 헤매는 노인의 발음은 툭하면 받침을 놓치곤 했다. 조그만 리어카에 매달려 가는 좁은 보폭에 가로막힌 노랫가락을 차도 쪽에서 다가온 불협화음이 한입에 삼켜버렸다. 라디오에서는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기택의 노래에서. 2023.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