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산오름/황인숙 산오름/황인숙 친구와 북한산 자락을 오른다 나는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걷고 친구는 느릿느릿 그의 기척이 아득하다 나는 친구에게 돌아가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기를 몇 번, 기어이 친구가 화를 낸다 산엘 왔으면, 나무도 보고 돌도 보고 풀도 보고 구름도 보면서 걷는 법이지 걸어치우려 드느냐고 아하! 친구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걸으려는데 어느새 획획 산을 오르게 되는 나다 땀을 뚝뚝 흘리며 바위에 앉아 내려다보면 멀리서 친구가 느릿느릿 올라온다 나무도 데리고 돌도 데리고 풀도 데리고 구름도 데리고 2022. 7. 22. 빗방울은 구두를 신었을까/송진권 빗방울은 구두를 신었을까/송진권 아직 발굽도 여물지 않은 어린것들이 소란스레 함석지붕에서 놀다가 마당까지 내려와 잘박잘박 논다 징도 박을 수 없는 무른 발들이 물거품을 만들었다가 톡톡 터트리다 히히히힝 웃다가 아주까리 이파리에 매달려 또록또록 눈알을 굴리며 논다 마당 그득 동그라미 그리며 논다 놀다가 빼꼼히 지붕을 타고 내려가 방바닥에 받쳐둔 양동이 속으로도 들어가 논다 비스듬히 기운 집 안 신발도 신지 않은 무른 발들이 찰방찰방 뛰며 논다 기우뚱 집 한채 파문에 일렁일렁 논다 2022. 7. 22. 따오기/문태준 따오기/문태준 논배미에서 산 그림자를 딛고 서서 꿈쩍도 않는 늙은 따오기 늙은 따오기의 몸에 깊은 생각이 머물다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어느 날 내가 빈 못을 오도카니 바라보았듯이 쓸쓸함이 머물다 가는 모습이 저런 것일까요 산 그림자가 서서히 따오기의 발목을 흥건하게 적시는 저녁이었습니다 2022. 7. 22. 여름비 한단/고영민 여름비 한단/고영민 마루에 앉아 여름비를 본다 발밑이 하얀 뿌리 끝이 하얀 대파 같은 여름비 빗속에 들어 초록의 빗줄기를 씻어 묶는다 대파 한단 열무 한단 부추, 시금치 한단 같은 그리움 한단 그저 어림잡아 묶어놓은 내 손 한 묶음의 크기 2022. 7. 22. 이전 1 ··· 34 35 36 37 38 39 40 ··· 1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