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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시골길 또는 술통/송수권 시골길 또는 술통/송수권 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풀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2022. 7. 22.
종암동/박준 종암동/박준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 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2022. 7. 22.
울다 염소/조현석 울다 염소/조현석 비어 있던 속, 기름기 없던 뱃속으로 푹 삶아진 염소가 갈기갈기 찢겨져 들어왔다 술 몇 잔과 더불어 신선한 공기도 몇 됫박 소독되지 않은 단양 하선암 생수도 몇 컵 해체된 염소 몸이 남긴 갖은 부속물을 소주 반 잔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어 배 속 깊은 곳에 가두었다 밤새 되새김질하는 염소가 운다 울음이 깊을 때마다 몸이 요동쳤다 속 편해지려고 되지도 않은 되새김질을 나도 여러 번, 하고 또 했지만 날카로운 뿔에 받혀 상처가 난 듯 꾸르르륵… 더부룩했다, 밤새 염소가 풀밭이 아닌 융단 같은 위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놀았다 낮에 몸 부딪는 축구를 해서인지 왼쪽 어깨가 아파 오른쪽으로 돌아눕고 등이 배겨 배를 깔고 돌아누웠던, 아침이 다가오는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그 놈이 울었다 비가 부슬.. 2022. 6. 25.
포장마차/이재무 포장마차/이재무 ​ 포장마차는 술 취한 승객들을 싣고 달린다 마부는 말 부리는 틈틈이 술병을 따고 꼼장어를 굽고 국수를 말아 승객들의 허기를 채우느라 여념이 없다 ​ 술 취한 승객들은 마차의 속도를 모른다 하지만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니까 포장마차는 시간의 도로나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 수시로 포장을 열고 닫으며 승차와 하차하는 사람들 후끈 달아오른 실내에서 계통 없이 떠들어대는 사람들 ​ 바깥은 찬바람이 불고 빈 술병은 한구석에 쌓여 작은 산을 이룬다 ​ 이윽고 종착역인 새벽에 도착한 마차가 마지막 승객을 토해놓고 마부는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려 기지개를 켠다 어디 먼 데서 기적 같은 말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2022.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