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밭/時調205 여름 일기 여름 일기/김춘기 뒤란 펌프 물 길어 땡볕도 부어 넣고 아버지 등을 민다, 심장소리 더듬는다 온몸엔 구십년 주름 화석처럼 잠겨있다 움푹 앉은 아랫배 갑골문자 앙가슴 아들 앞에 맨몸으로 아이가 되신 어르신 정강이 발목 그 아래 갈퀴발이 선명하다 동생들과 턱걸이하던 이두박근 통나무 팔뚝 이젠 고사목인가 뚝뚝 꺾일 것만 같다 툇마루 걸터앉으신 어머니 머루알 눈물 장독대 위 정화수 당신 소원 고여 있고 울에 기댄 토란잎도 손에 손 모으는데 반 뼘의 세월 꼬리를 산그늘이 지우고 있다 2012. 3. 7. 花甁의 꽃 花甁의 꽃/김춘기 햇살에 취한 그 날 허리 쓱 잘려졌다. 피 뚝뚝 흘리며 혼절한 흑빛 잎새 차디찬 분무기 물살에 水晶처럼 눈을 뜬다. 귀도 손도 떨어지고 꿈마저 베어져서 통증 참아내며 화병에 꽂혀 운다. 연둣빛 비린내들이 내 주위를 나뒹군다. 눈감고 귀도 막고 서러움 삭혀가며 꽃으.. 2012. 3. 7. 기침 소리 이어지다 기침 소리 이어지다 교외선 철길 따라 이슬 젖은 사연들이 밤낮 구별 없이 바람에 실려 오갑니다. 역전엔 뜬소문들이 낙엽처럼 구릅니다 산동네 기침소리 종일 오르락내리락 눈물 마른 헛웃음 가슴 죄다 팝니다 오늘도 밤새 불 켜는 블록담집 노부부 2012. 3. 7. 로보사피엔스*/김춘기 로보사피엔스 김춘기 홍적세 말 시베리아 벌 맨발의 크로마뇽인 심장소리 더운 입김 설원 아래 숨겨 놓고 금속성 햇살에 잠긴 빌딩 숲속 헤쳐 나간다 통증 없는 인공무릎 나사 종종 조이면서 검지 지문 물결 따라 유리눈알 궁글려도 마천루 집무실 탁자엔 암호문자만 쌓이는데 제우스 손짓 따라 움직이는 두뇌인가 프로메테우스 복제 유전자 웃음 없는 신인류인가 내 친구 로보사피엔스 눈물 한번 보고 싶다 *Robot와 Homo Sapiens의 합성어로서 로봇에 가까운 미래형 인간을 뜻하는 말 -습작노트- 컴퓨터, 스마트폰과 면벽하고 살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생명공학을 이용하여 우리 몸의 부속품을 새롭게 조립해 나가는 과학기술의 틈바구니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던 슬픔과 기쁨의 눈물은 진정 우리 곁을 떠난 것일까요.. 2012. 3. 7. 이전 1 ··· 36 37 38 39 40 41 42 ··· 52 다음